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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의 하루

[궁궐] 창덕궁 본문

▣ 아그 ▣ 문화 소통가/조선

[궁궐] 창덕궁

아그쌤 2006. 11. 8. 23:04

정궁인 경복궁보다 더 많은 정치적 혼이 서려 있는 동궐인 창덕궁

오늘 그곳을 내 발길닿는 대로 걸어가 보기로 하자..

돈화문으로 들어가기전 동궐도에서 보듯이 돌계단이 드러나 있다.

일제 강점기 자동찻길을 내기 위해 땅속에 묻었던 부분을 원형대로 되살렸다. 

금천교

해태상이 아치 사이에 있고 반대편의 돌거북과 대비된다.

해태상 위쪽에는 역삼각형의 석재에 벽사의 의미를 담은 귀면이 새겨져있다. 

동궐도상의 방향과는 다르다.

거북아! 거북아!   용왕님께 갈꺼니?

 

인정문

연산군, 요종, 헌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등 여덟 군주가 이곳에서 왕위에 올랐다. 

 인정전 서월랑

현재는 열린공간으로 복원되었지만 <동궐도>에는 닫힌 공간으로 묘사되어있다.

이곳에는 선원전, 양지당, 영의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인정전

순종은 1907년 창덕궁으로 이어하면서 인정전 지붕 용마루에 왕실 문양인 오얏문양을 넣었는데,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희정당

희정당 남행각 정문

순종 代 이후 자동차가 접근할 수 있도록 현관을 돌출시켜 놓았다. 

희정당 

협각에 '강'

희정당 내부모습 

 희정당 내부모습

내부벽면위쪽에 해강 김규진이 그린 <총석정절경도>가 있는데, 해인사의 일주문도 이 분이 쓰셨다고 한다.

 

대조전

순조 33년의 대화재 때 타버렸다가 순조 34년(1834)에 재건되었다.

이때 재건된 대조전은 정명 아홉 칸, 측면 다섯 칸, 모두 마흔다섯칸이고 순조가 지은 상량문이 있다.

철종이 여기서 승하했고 일제 강점기까지 존속했다가, 117년 창덕궁 대화재 때 또 불타는 비운을 만났다. 그 뒤 1920년 재건할 때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헐어다가 지었다. 그리고 교태전 옆의 건순각을 헐어다가 대조전 동북쪽에 함원전을 지었다. 이것이 지금 남아있는 대조전이다. 

 

 

 

 

주합루, 규장각

규장(奎章)이라는 이름은 하늘의 별 중에서 문장을 맡은 별인 규수가 빛나는 집이라는 뜻이다.

주합(宙合)은 우주와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주합루 정조임금님의 어필로...

 부용정

상량문을 정조가 직접 지어써으며, 정조 19년(1795)에 사도세자와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하여 화성에 다녀온 뒤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부용정에서 규장각 신하들과 낚시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어수문

정조가 세운 이 문에는 임금과 신하가 물고기와 물처럼 한 몸이 되자는 뜻이 담겨있다.

 

영화당

영화당에서 본 부용정과 사정기비각

 

 의두합(기오헌)

독서처

애련정 

 

 낙선재의 정문인 장락문

대원군이 쓴 편액

동편의 석본헌의 처마 안쪽 모양이 이채롭다. 

선향재

응접실과 서재로 이용하던 곳

상량정=펑원루

 

 

 

관람정

순종 대에 세워진 것으로 부채꼴 모양이 독특하다. 

 

 

 

옥류천 큰바위

위에는 숙종의 어제 시가

아래에는 인조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청의정

궁궐 안에서 유일하게 초가지붕을 한 정자

농민의 삶을 직접 체험하려는 임금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