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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왕릉이란? 본문

▣ 아그 ▣ 문화 소통가/조선

[왕릉] 왕릉이란?

아그쌤 2006. 10. 10. 20:38
왕릉의 의미
왕릉 (王陵)은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말한다. 조선시대 왕실가족들은 장례를 마치고 무덤을 마련하는데, 지위에 따라 능(陵), 원(園), 묘(墓)라고 하여 무덤 양식에 따라 그 차이가 있었다. 왕과 왕비는 ‘능', 왕세자와 왕세자빈은 ‘원', 군이나 후궁은 ‘묘'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왕릉 조성은 한양을 중심으로 10리(4km) 밖, 100리(40km) 이내로 정하였지만 예외적으로 강원도 영월의 장릉(莊陵;단종)과 경기도 여주의 영릉(英陵;세종) / 영릉 (寧陵;효종) 등이 있다. 현재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는 능과 원의 수는 왕릉이 40기, 원이 13기이며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齊陵;태조 신의황후)과 후릉(厚陵;정종)의 2기가 더 있다.

조선시대 왕릉의 제도는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였다 . 태조의 건원릉은 고려 공민왕의 능을 따른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묘제문화는 같은 유교문화권인 중국과 일본과 유사한 점도 있지만 각기 다른 문화적 특수성이 왕릉에서도 보인다. 그 특징으로 봉분 주변에 석물 등의 시설물들을 배열하고 풍수설을 고려하여 자연지형과 어우러진 역사문화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왕이 죽음을 맞이하면 왕이 죽음을 확인하는 ‘촉광례'와 왕의 혼을 부르는 ‘초혼의식'을 거쳐 5일을 기다렸다가 입관을 하였다. 왕의 시신을 모신 관을 ‘재궁'이라고 하며 재궁에 입관하기 전 장례절차로 목욕, 습, 반함, 소렴, 대렴을 행하였다. 입관을 하고 나서 5개월 만에 국장(國葬)을 치루게 되는데, 이 기간동안 시신을 모신 곳을 ‘빈전(殯殿)'이라고 한다. 왕이 죽으면 장례를 위한 임시 기구가 설치되어 장례 준비에 들어간다. 왕의 장례 업무를 총괄하는 국장도감(國葬都監), 왕의 시신을 모시고 빈전 제사와 호위를 담당하는 빈전도감(殯殿都監) 그리고 왕릉을 만드는 산릉도감(山陵都監)이 설치되었다.

왕릉 공사를 맡은 산릉도감에서는 왕릉공사를 위해 왕의 시신을 모신 명당을 찾고 금표를 세워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았다 . 왕릉 주위에는 해자(垓字)를 파놓고 능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금천교(禁川橋)라는 다리를 놓았다. 다리를 건너면 왕릉의 신성함을 알리는 붉은색의 신문(神門) 즉 홍살문이 있다. 홍살문에는 정자각까지 길이 나있는데, 이 길을 참도(參道)라고 하며 참도의 왼쪽 부분을 한 단 높게 하여 혼(魂)이 다니는 길인 신도(神道)를 만들었다. 정자각은 왕릉에서 제례를 지내는 공간이다. 건물 모양이 위에서 보면 정(丁)와 닮아서 정자각이라고 하며 제례를 지낼 수 있도록 의자와 제례상이 놓여져 있다. 정자각 동쪽에는 왕과 왕비의 묘호와 행적을 기록하여 돌에 새긴 비석이 건물 안에 놓여져 있다.

왕과 왕비가 머무는 곳을 ‘궁 (宮)'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는데,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도 궁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여 시신을 모신 관을 ‘재궁', 왕릉의 지하석실을 ‘현궁(玄宮)'이라고 하였다. 둥근 봉분 아래에는 재궁을 모신 현궁이 있다. 현궁은 왕릉의 중심적인 공간으로 왕과 왕비가 계신 곳으로 궁궐의 침전에 해당한다. 현궁은 돌판으로 석실 공간을 만들고 남쪽으로 출입문에 해당하는 문비석을 세웠다. 석실에는 벽화를 그려 넣었다. 뚜껑돌에는 일월, 성신을 석실 4벽에는 각각 방위에 따라 청룡, 백호, 현무, 주작을 그렸다. 현궁을 돌로 짓는 문제는 조선 건국초기부터 반대의견이 있었는데, 태종대에는 종묘에서 점을 쳐서 석실을 쓰기로 하고 일반인들은 회격을 쓰도록 하였다. 세조대에는 석실 대신에 회격을 사용하여 이후 회격이 일반화 된 것으로 보인다. 석실 위에는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들었는데, 봉분과 그 주위에는 여러 석물들이 배치되었다. 봉분에는 지면에 지대석을 놓고, 봉분둘레에 병풍석을, 병풍석 위로 만석과 인석을 얹어서 봉분을 고정하였다.


봉분 앞으로 높이를 3단으로 설치하여 첫째 단에는 혼령이 노니는 ‘혼유석(魂遊石)' 혹은 ‘상석(床石)', 망주석(望柱石), 가운데 단에는 장명등(長明燈)과 문인석(文人石) / 석마 (石馬)를, 셋째 단에는 무인석(武人石)과 석마를 두었다. 봉분 좌우에는 봉분을 지키는 석물로 호랑이와 양이 있다.
봉분의 영역을 나타내는 곡장(曲墻)이 둘러져 있다. 왕릉이 완성되면 절기에 맞추어 제례를 행하는데 , 평상시에는 능을 지키는 관리를 두어 왕릉 주변 청소, 화재예방, 수목관리를 하였다. 왕릉에는 종 5품 능령(陵令)과 종 9품 능참봉(陵參奉)이 여러 능지기들과 함께 능 안에 있는 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왕릉을 관리하였다. 

 

왕릉의 구성

 

 

   곡   장(曲   墻) : 능상을 보호하기 위해 능상주변 동 / 서 / 북 3면을 둘러쌓은 담장
   능   상(陵   上) : 왕과 왕비의 무덤 (=봉분). 순조대왕과 그 비 순원왕후(합장릉)
   난간석 (欄干石) : 능상을 보호하기 위한 일환으로 능상 주위를 난간처럼 둘러싼
석물(石物). 병풍석이 없는 경우 주로 난간석에 12방위가 표시됨
   혼유석 (魂遊石) : 혼령이 나와 쉴 수 있도록 능상 앞에 설치하는 직사각형 형태의 돌 .
   장명등 (長明燈) :

일반적으로 돌아가신 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 무덤 앞에 세움
승려의 묘인 부도 (浮屠) 앞에 석등을 설치한 예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왕릉으로 이어진 것으로 조선 왕릉에서는 혼유석 앞에 설치

   망주석 (望柱石) : 일반적으로 무덤 양 옆에 설치하는 돌기둥 . 망주석의 기능에 대해서는 음양의 조화, 무덤의 위치 표시, 왕릉의 생기 보존을 위한 시설물 등의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음.
   문인석 (文人石) : 장명등이 있는 공간에 위치한 문관으로 관대를 착용하고 홀 [笏:왕을 만날 때 조복에 갖추어 손에 쥐는 물건]을 쥐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음.
   무인석 (武人石) : 문인석 밑에 위치하는 무관으로 갑옷 ? 투구 등을 갖추고 검을 뽑아 두 손으로 집고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음
   석   마(石 馬) : 각각의 문/ 무인석에 배치되어 있는 말 (馬)
   석호 (石虎) /
    석양 (石羊 ) :
능을 보호하는 의미로 설치된 동물로서 (호랑이, 양) 외부의 침입을 경계하는 형태로 바깥쪽을 바라보는 모습을 함. [양(羊)은 악귀를, 호(虎)는 맹수를 내쫓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됨]
   정자각 (丁字閣) : 왕과 왕비의 신좌 (神座)를 모시고 각종 제사를 지내는 정자(丁字) 형태의 건물.

 

 

 

출처 : 한국의 재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