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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4) 광개토왕비의 내용 - 건국 신화 ·업적 등 1775자에 담아 본문
[사건·인물로 보는 고구려사] (4)광개토왕비의 내용 건국 신화·업적 등 1775자에 담아 | ||
비의 높이는 6.39m, 비의 아랫부분 너비는 평균 1.5m이고, 예서로 기록했으며 글자 수는 모두 1775자입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글자가 141자로, 이 가운데 앞뒤 문맥으로 추측 가능한 글자 9자를 제외하면 현재 132자에 대한 판독이 불가능합니다.
비문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고구려 건국과 관련하여 주몽, 유리, 대무신왕 등 초기 왕들의 이야기에 이어 광개토왕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왕의 자리에 올랐는가를 알려줍니다. 둘째 부분은 광개토왕의 업적을 기록한 것으로 백제 정벌, 신라 구원, 부여 정벌 등에 대한 내용입니다. 셋째 부분은 묘비와 묘의 관리 문제가 적혀 있습니다.
광개토왕비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비문의 잘못된 해석으로 국가간의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비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주된 내용은 광개토왕의 업적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전체적인 내용과는 관계없이 하나의 문장을 이용하여 일제가 한반도는 자신들이 오래전에 지배했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무렵 일제는 대륙을 침략하기 위한 준비를 위해 첩보원들을 중국에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들 첩보원 중 한 명인 사코 가게노부 중위는 1884년 일부는 땅에 묻혀 있고, 이끼로 잔뜩 덮여 있던 광개토왕비를 찾아가 이끼와 흙을 닦아내고 탁본(비석에 먹을 칠한 뒤 종이를 대고 두드려 글자나 그림을 그대로 찍어냄)을 떠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비의 일부가 깨져 나가기도 했습니다. 일본 육군참모본부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이 탁본의 내용을 살펴보았고 일부 내용을 자신들의 마음대로 바꾸고 조작하여 한반도 침략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일제가 비문을 멋대로 바꿔 어떻게 이용했는가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 김영철(서울 상원초등 교사)
입력시간 : 2004/09/21-1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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